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요새 읽고 있는데, 이 책의 특징은 인간의 심리를 정말 집요하게 파해쳐서 서술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프루스트가 아마도 신경증 환자가 아니었을까 추측을 했었는데, 조사해보니 실제로 심기증 환자였다는 기록을 발견하였다. 확실히 이 책에는 자신의 정신을 병적으로 반추하고 가늠하고 하는 등의 특색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정상인도 이런식의 책을 오래 쓰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주제로한 2차연구도 활발한데, 개인적으로는 질 들뢰즈의 기호학적인 연구가 흥미로워 보인다. 나는 들뢰즈처럼 형이상학적인 사람들을 싫어하는데 마침 이 사람이 프루스트를 연구하였으니 겸사겸사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지난 묘곡에 이어서 역시 고양이를 소재로하여 이 책을 패러디한 소설로 내가 이 책으로 부터 받은 인상을 표현해보고자 한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
행인의 충고에 따라 츄르를 산 진은 방금전 고양이를 만났던 산책길을 다시 올라갔다. 전날에 내린 이슬비가 길의 표면을 잔잔히 덮고 있었는데 이렇게 형성된 수막은 진의 신발을 다소간 미끄럽게 했다. 이 미끄러움은 분식집 테이블에 놓인 우동국물이 외부로부터 아무런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저절로 미끄러지는 경우에 있어서, 그 미끄러움 만큼보다는 다소간 덜하고, 보습성분이 과한 손세정제로 손을 여러차례 닦아도 약간은 남아있는, 그 미끄러움 만큼보다는 약간 과한 그러한 미끄러움이었으나 진이 발끝에 힘을 줄때마다 그 힘과 이같은 미끄러움이 상쇄되어 진이 느끼는 미끄러움은 맥박에 따라 드문드문 찾아오는 편두통의 통증과도 같은 형태를 띄었다. 진이 주머니에 넣어놓은 츄르 봉지를 손에 쥐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게 났다. 이때 진은 살짝 놀랐는데, 이 놀라움은 단지 순수한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그동안 고양이를 몰랐었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이 섞인 놀라움이었다. 이 부끄러움은 남들은 다 아는 것을 자신만이 몰랐을때 겪는 그러한 감정인데, 이때 진은 며칠전 남들은 다 아는 인기가수 츄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되어 느꼈던 동일한 부끄러움의 감정과 그 감정을 느꼈었던 그때의 공간, 시간,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러한 연상은 츄르를 만졌을때의 부스럭거림이란 소리가 났다는 사건, 그리고 가수 츄를 처음 알았다는 사건간에 진이 느꼈던 감정의 동일성만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감정의 동일성외에도 츄르라는 하나의 단어가 가진 츄, 그리고 인기가수 츄라는 이름이 가진 그것 그대로의 츄, 이렇게 언어적인 동일성도 진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연상의 한가지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언어적인 동일성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동일함에 그친다고 볼수는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어찌되었듯 이 언어의 동일함때문에 진은 인기가수 츄와 그녀와 관련한 감정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 때문에 사실 진정한 연상의 원인은 이 단어의 동일성이라고 말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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