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지상의 양식 (김화영 역)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책의 형식적 장르를 명확하게 특정짓기가 어려운 책이다. 시 같기도 하고 소설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데 대략 시적인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고 막연하게 지드가 한 50세즈음 중년의 나이가되서 쓴 책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무려 20대 젊은 시절에 쓴 책이었다. 이 나이에 이러한 정신적 경지에 도달 하다니 정말 믿기 힘든 일인데 심지어 지드는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에 추가한 머릿말에서 본인은 이미 이 책의 사상적 수준을 벗어난지 오래라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데, 왜냐하면 내가 언어로 이 책의 내용을 규정짓는 순간 모든것이 뒤틀려지고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높은곳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왼발 오른발 자신의 발을 의식하는 순간 모든게 엉망이 되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같은 이유때문에 이 책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인데, 역자가 달아놓은 주석도 처음에는 가급적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책을 읽고 대략 지드가 쾌락주의자라는 느낌, 감상주의자라는 느낌, 반-이성주의자라는 느낌이 든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시중에 이 책에 대한 많은 후기들이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모두 잘못이해한 사람들이다. 아울러 지드는 다른 책에서는 이 책과 완전히 모순되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상의 양식에서는 본인이 자기에 대해 아는 것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도리어 자신을 아는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지드의 이런 태도들이 모순처럼 느껴진다면 이 책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2.코리동 (권기대 역)
나는 위 지상의 양식을 읽고서 지드가 책의 표면과는 다르게 대단히 이성적인 사람일것이란 추측을 했는데, 이 책을 통해 나의 예측을 실증할수가 있었다. 아마 두 책의 저자명을 가리고 모두 읽은 사람들은 두 책이 같은 작가가 썼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수가 없을것이다. 이 책은 지상의 양식과는 달리 논증적인 형식을 갖추어 대단히 논리적으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마치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보는듯한 느낌의 소설인데, 코리동이라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가 등장하여 토론을 한다. 토론의 주제는 바로 동성애인데(앙드레 지드가 동성애자이다), 성욕과 사랑에 대하여 주로 “과학적인 고찰”을 시도한다.
물론 지드가 과학자는 아니고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적 지식은 주로 20세기 초반의 것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일단 그의 논증과정에 큰 흠은 찾기 힘들며 무엇보다 지드가 자신과 같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코리동과 반대하는 친구의 1인 2역을 준수하게 해낸다는 점이 놀랍다. 즉, 사안을 최대한 객관화하여 진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무작정 본인에게 유리하게 동성애 옹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여담으로 나는 위 지상의 양식을 두번째 읽고서 지드의 자연관을 이해하려면 “파브르 곤충기”를 읽는것이 좋겠다 싶어 전집을 바로 구매 하였는데, 이 책 코리동을 보니 정말로 파브르 곤충기가 무수히 인용되고 있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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