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가 말하는 예술가의 기본자세

아래는 마광수 교수의 책, “시학”에 수록된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글인데, 문학인이 가져야할 “진정성” 혹은 “지적진실성”에 대해 잘 표현되어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글에서는 문학인 만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든 예술인에게 적용될수 있는 것이라 “예술가의 기본자세”에 대한 글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마광수 교수의 사상의 최상단에는 결국 “위선의 타파”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글은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마광수가 생각하는 시인의 기본 자세>

문학은 혼자서 하는 고통스런 배설이어야 한다. 작당을 해서되는 것도 아니요, 토론을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문단을 보면 너무나 인간적 유대관계에 휘말려 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놓는 문학작품들이 고통스런 배설물이 아니라 팔려고 내놓은 수공예품들 같다. 지나치게 매스컴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유명’해지려고 애를 쓴다. 독자들에게 아부하고 평론가들에게 아부하려고 애를 쓴다.

작가는 작품을 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면 그만이지 그 이상의 것을 바라거나 남들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 무엇 때문에 시류에 연연해 하고 매스컴이나 평론가들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하는가. 또 왜 그리 작가의 품위와 세속적 명예에 집착하는가.

작가도 물론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니 작품이 좋은 평을 받고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것이 뭐 어떠냐고 반문할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밑천이 많으면 장사는 그럭저럭 굴러가게 되어 있다. 먹은게 많으면 그럭저럭 똥이 많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작가들 상당수는 먹은게 없이도 계속해서 똥을 누려고 한다. 밑천도 없는데 세 치 혓바닥으로 잘도 장사를 해댄다.

시의 경우, 정직한 배설은 특히나 중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쓴 시가 이백 편이 채 안된다.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경험하지 않고서는 나는 작품을 쓸 수 없다. 그런데 요즘엔 일년에 한권씩 시집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일 습관적으로 시를 한편씩 써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시는 소설에 비해 변비증 걸린 환자처럼 낑낑거리며 간신히 배설해 놓는 함축적인 똥인데도 말이다.

얼굴엔 고독과 절망의 빛이 아니라 피둥피둥한 출세욕과 명예욕이 흐르고, 이사람 저사람 만나 장사치들처럼 잘도 교제를 해댄다. 작품의 내용엔 민중의 삶이 담겨 있고 고독과 절망이 스며들어 있는데, 직접 만나 보면 사치스런 지적 허영을 즐기는 엘리트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 하지만 심한 말은 아니다. 시창작의 정도는 모름지기 고독한 가운데서의 정직한 배설에 있다는 것을 재삼 강조해 두고 싶다.

– 1997년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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