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작자를 위한 철학 5 | 봉준호 감독, 창의성의 비밀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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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창의성에 대한 명언

봉준호 감독의 명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번쯤 보신적이 있으실겁니다. 짤 형태로 가공되어 여기저기 많이 퍼져있는데 저도 인스타에서 몇번 보았습니다 [1]. 그런데 사실 봉준호 감독이 위 명언대로 딱히 활동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홍상수 감독이라면 이 명언이 잘 어울릴법도 한데 말이죠. 정작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들을 보면 괴물, 살인의 추억, 기생충, 설국열차.. 등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원작이나 모티브가 되는 다른 영화나 사건들이 존재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이 명언은 봉준호 감독의 본의와는 다르게 우리에게 심각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창의성의 근원이 마치 내 자신에 있는 것 처럼 들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문제를 중심으로하여 창의성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봉준호 명언의 제조 과정

일전에 “명언의 제조 과정”에 관하여 빙산의 일각을 비유로 들어 설명한적이 있는데, 여러분은 이제 이 봉준호 감독의 명언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쳐 제조되어 유통된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수 있겠죠?😆 이 명언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했던 소감문에서 일부가 발췌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문을 보겠습니다.

 

<봉준호 감독 수상 소감 전문>

감사합니다(Thank You). 좀 전에 국제장편영화상을 받고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나면.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그 말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말이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마틴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같이 후보로 오른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이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구요. 제 영화를 아직 미국 관객들이나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하고 했던 ‘쿠엔틴 형님'(쿠엔틴 타란티노)도 계신데 정말 사랑합니다. 쿠엔틴 ‘I love you’.

그리고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필립스(영화 ‘조커’)나 샘 멘데스(영화 ‘1917’) 등 다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인데 이 트로피를 정말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Thank You, I will drink untill the next morning, Thank You.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까지 한잔 하면서 즐기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위 전문에서 빨간색이 바로 명언으로 발췌되어 유통이 되었던 부분입니다. 그리고 파란색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표시한겁니다. 여러분도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수상 소감은 굉장히 특이한 소감입니다. 저는 수상 당시에 이 소감을 뉴스로 보고 봉준호 감독을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구나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이런식의 소감을 한 사람이 또 있나 대강 찾아봤는데 역시나 찾지 못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자신감

제가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당신들은 정말 대단한 아티스트입니다. 한국의 비틀즈에요” 라고 칭찬을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혹은 여러분이 성공한 영화감독인데, 제가 여러분에게 “감독님 팬입니다. 감독님은 리틀 봉준호에요!”라고 칭찬을 한다면 여러분 기분은 어떨까요? 방탄이나 여러분이나 아마 속으로 기분이 찝찝할겁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예술가들은 오리지널리티, 즉 개성과 독립성을 본능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남의 작품을 빼끼거나 표절하는 사람도 정작 저런식의 칭찬을 들으면 불쾌할겁니다.😂

따라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 할수 있는데, 수상소감 전체가 다른 감독에 대한 존경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봉 감독은 비단 여기서 뿐만 아니라 제가 여러번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해외에서 거장 감독들을 만날때마다 하나같이 “당신 작품을 보며 영화를 배웠다”, “당신의 무슨무슨 작품이 참으로 좋았다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식의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위 아카데미 수상을 하기전에 이미 봉준호 감독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감독이었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었습니다. 언급된 다른 감독들에게 속된 말로 “꿀릴께 없는” 감독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다른 감독 칭찬을 하며 그들에게 배웠다는 소감을 말하게 된다면 통상적인 감독들은 말하면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들겁니다. 즉, 통상적인 감독들은 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그래서 제가 봉준호 감독의 소감을 듣고서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봉준호 감독은 저런 행동을 한것일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인사치레 따위가 아니고 정말로 봉준호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롯하여 언급된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공부”를 열심히 한것이고, 마침 시상식에 그들이 나와 본인 눈앞에 있으니 너무나 감격스러운겁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 감정대로 솔직하게 소감을 하다보니 저렇게 다른 감독 칭찬 일색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둘째는, 봉준호 감독은 대단히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즉, 자기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자신의 오리지널리티가 타인에게 어떻게 평가될지 따위에 애당초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중요한 자리에서 남한테 배웠다는 소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인데 이는 진정한 자신감이 없다면 할수 없는 행동입니다.

창의성의 근원으로서의 과거의 전통

봉준호 감독의 명언은 시중에 유통되는 부분이 아니고, 몇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전문을 살펴야 그속에서 진짜 창의성의 근원을 포착할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봉준호 감독의 창의성은 “개인주의”가 아니고 “타인주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여러 거장 감독들의 “고전”을 수없이 공부하고 성실히 학습한 결과 얻게된 것이 바로 봉준호 감독의 창의성인 것입니다. 결국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명언은 완전히 거꾸로 왜곡된 의미를 담은 셈이 됩니다.

창의성이란것이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과거의 전통”과 단절된채, 한명의 개인이 머리를 비우고 흐느적 거리고 있으면 별안간 번개가 치듯이 번쩍하고 머리속에 새롭게 들어오는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것을 하려면 옛날것들은 버려야 한다면서 전통을 무시하고 나태하게 놀면서 새로운것을 한답시고 무언가를 깨작깨작 하지만 결과물은 한없이 조잡할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의 혁신과 창의성은 과거의 전통과의 연결에서 나왔습니다. 다음은 과학자 뉴턴의 말입니다.

 

나는 단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세상을 바라봤을뿐이다. – 뉴턴 

 

여기서 “거인”이라 함은 뉴턴 이전의 수많은 과학자 선배들을 의미합니다. 뉴턴 본인은 그 지식들을 모두 마스터한후에 단지 살짝 숟가락만 위에 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하고 완전히 동일한 취지인것을 알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말이 뉴턴이 겸손떨려고 한 말이 아니고 진심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뉴턴은 성격이 좀 건방졌던걸로 유명하기 때문이죠.😆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 화이트 헤드 

 

화이트 헤드는 20세기 철학자 겸 수학자로서 이전에 소개해드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동료입니다. 그는 서양철학 2000년 동안의 모든 철학자들의 활동이 결국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철학에 후대의 철학자들 각자가 해설 몇줄을 단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딱히 과장이 아닌데, 정말로 서양철학 전체의 역사는  “대강 말하면” 플라톤의 형이상학에 찬성하여 그것에 추가적인 사항을 덧붙이거나 혹은 반대하여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거나 둘중 하나로 분류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쪽 어느 것이든 플라톤의 영향력 밑에 있다고 볼수 있는 것이죠.

유명한 거장 감독들 역시 젊은 시절 어찌보면 시시할수도 있는 기본기들을 수없이 다지고 난후에 창의성을 발휘한것이지 날때부터 과거의 전통을 한개도 모른채로 새로운 것을 척척 만들어 내던 감독은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에릭 로메르 감독, 고다르 감독은 초창기에 어찌보면 식상할수도 있는 텔레비전 연출부터 시작을 하였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연출방식이 새롭고 독특한데, 그도 역시 젊은 시절 “식상하고 전통적인” 헐리웃식 연출방법을 모두 공부한 사람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에도 등장하는 타란티노는 영화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비디오가게 알바를 하며 역시 “전통적이고 식상한” 영화 2만여편을 보고 공부한후에 손님들에게 해설을 해주었다고 하네요. 결국 엄청난 놈이 비디오가게에서 알바한다는 소문을 들은 헐리웃 관계자에게 스카웃되어 감독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정말이지 분야를 막론하고 단 한명의 예외없이 그 누구도 과거의 전통을 무시하고 과거를 모른채 거장이 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게 진실일까요? 사실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예외도 가끔 있습니다. 저는 단 두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 모든 위인들을 전수 조사한것은 아니라 몇명 더 있을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많이 추가 되지는 않을겁니다. 여담으로 이 굉장한 두 분을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 이 분은 종교 관련 전통적인 지식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종교분야 최고의 존재중 하나가 됩니다.

다른 한분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입니다. 이분은 원래 공대 대학원생이었는데, 별안간 철학계로 입문하여 학생인 상태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가 됩니다. 어짜피 시작하자마자 최고가 되서 죽을때까지 기존의 전통적인 철학 지식은 공부를 거의 안해 잘 몰랐다고 하네요.

위와 같이 우리는 자기 자신이 “신적인 존재”이거나 혹은 “2천년을 주기로 태어나는 천재”라는 확신이 드는 경우 이외에는 과거의 전통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창의성을 얻을수 있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제 이 과거의 전통에서 영화창작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움을 습득할것인지, 다시 말해 “레퍼런싱”을 할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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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사실 이 발언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직접 한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영화론을 설명하는 책에서 저자들이 유사한 늬앙스의 해설을 단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읽은 봉준호 감독이 착각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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