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창작에 있어서 사밀함의 객관화에 대하여

사밀함의 객관화의 문제

나는 주로 영화 클립들을 올리는 작은 유튜브 채널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데, 업로드된 홍상수 감독의 영상에 종종 홍 감독의 사생활과 작품을 연관시켜 부정적인 해석을 하는 댓글들이 달리곤 한다. 그가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변명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댓글들인데 대체로 이같은 의견들은 예술 창작에 있어서의 사밀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정말이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대중들은 예술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뒤섞어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예를 들자면 농도가 아주 짙은 야한 영화가 나왔다고 가정 한다면 개봉과 동시에 마치 현실의 세계가 영화처럼 야하게 변모한다고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더 나아가 영화의 창작자를 마치 섹스광인것 마냥 여기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예술작품과 현실세계, 그리고 예술가는 각각이 별개로 따로따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술가가 개인의 사밀한 개인사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 경우도 대부분의 예술가는 마치 국회 속기록을 기록하듯이 곧이 곧대로 개인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를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왜곡시켜 표현하게 된다. 이 예술적인 왜곡을 나는 이 글에서 “사밀함의 객관화”라고 이름붙여 부르겠다.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사밀함의 객관화

이제 두 명의 문학가가 이 “사밀함의 객관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먼저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집인 <결혼.여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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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불쌍한 자기 누이에게 덮쳐들지 않았어도 근친 상간에 관한 글을 쓸수 있는 것이니, 소포클레스가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없애고 어머니를 욕보였다는 얘기는 그 어디에서도 나는 읽어본적이 없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의 책속에서 반드시 자신에 관해서 글을 쓰며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인다는 식의 생각은 낭만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치한 발상중 하나이다. – 중략-

오히려 나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객관적인 작가가 되었으면 했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객체로 여기지 않은 채 여러가지 주제들을 생각하는 작가를 나는 객관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작가 자신과 작가가 다루는 주제를 혼동하는 오늘날의 열병은 작가의 이러한 상대적인 자유를 인정할줄 모른다. -중략-

다만 나는 그 생각을 다루고 그것의 논리를 규명하기 위하여 그것과 필요한 거리를 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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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단에서 카뮈가 말한 것처럼 작품의 내용과 작가의 경험이 반드시 일치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두번째 문단에서 밝힌것처럼 카뮈는 작가가 객관적 입장에 서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과 연관지어 작품을 창작할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카뮈는 그 이유를 세번째 문단에서 암시하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객관성을 지니고 있어야 진실의 규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앙드레 지드가 말하는 사밀함의 객관화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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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식도 부끄러움도 없이 이 책에 내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나는 때로 본적도 없는 고장들, 맡아보지도 않은 향기들, 하지도 않은 행동들 — 혹은 아직 만나본 적도 없는 그대 나타나엘 — 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위선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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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의 이 책은 지드 본인의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불릴만큼 매우 사밀한 개인사를 담은 작품인데, 사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위와 같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 의도한바에 따라 사실과 허구를 섞어 각색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렇게 분명히 밝혔음에도 독자는 책을 읽어나가는 와중에 이 사실을 슬며시 잊어버리고 책의 내용 모두가 지드의 경험을 곧이 곧대로 기술한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데(사실 내가 그랬고 세번째 읽을때 비로소 위 구절을 의식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만큼 지드의 표현이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지드는 자신의 책이 가진 허구성을 허식이 아니요 위선도 아니라고 일견 모순되는듯한 말을 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자.

사밀함의 객관화의 필요성

그렇다면 사밀함의 객관화가 왜 필요한 것일까? 오히려 객관화 작업을 거치지 않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진솔한 작품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단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명백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였는데, 따라서 일단은 사밀함의 객관화가 가지는 장점과 기능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겠다.

먼저 객관화없이 개인사를 날것 그대로 기술한다면 아무래도 감정에 과하게 북받친 한풀이성 글이 되기 쉽상이다. 사실 이런식의 개인 일기장에 다름없는 글들을 시나 소설, 에세이랍시고 쓴 것들이 시중에 많이 있는데 읽어보면 하나 같이 감정과잉에 무언가 세상을 흐리멍텅하고 단순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리고 사건을 직접 경험한 창작자와 독자의 마음상태는 당연히 다를수밖에 없기에 위와 같은 직접적인 서술 테크닉으로는 공감을 유도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독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일종의 계몽주의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는 작품인데, 그가 자신의 작품에 의도적인 허구성을 가미한 이유는 창작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서 허구적 각색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밤을 꼬박 세워 쓴 연애 편지를 다음날 아침 전해주었지만 효과라는 것이 하나도 없고 먼 훗날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며 이불킥한 경험이 있을것이다. 이 전형적인 사건은 사밀함의 객관화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한가지 쉬운 모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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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응답

  1. 비밀 아바타
    비밀

    ‘누구나’는 아닐 것 같은데 진 님은 그러셨나 보군요. 사밀함의 객관화가 필요함이 정말 강조됩니당.

    1. 아 저만 그랬나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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