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적으로 말해서, 발현된 감정은 그것 그대로 내비두고 자연적으로 소멸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1]. 예를 들어 불안하면 그냥 불안한채로 있는것, 우울하면 그냥 우울한채로 있는것이 최선인것이다. 이때 무리하게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인위적으로 허튼 짓들을 — 예를 들면 감정을 없애려고 본인 스스로를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던가 하는 — 하게 되면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을 치면 더더욱 늪에 깊이 침몰해들어가듯이 감정에 더더욱 빠져들어가게 된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우울증세가 발현되어 우울감이라는 감정이 생겨났을때에는 음악도 듣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이 경우에는 어떠한 자극도 주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의 경과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를 위한 음악치료 기법은 우울증세가 다소 약화된 평상시에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 환자는 평상시에 어떤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까? 이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론과 이에 대비되는 니체의 음악철학을 인용하여 생각해볼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론의 골자는 슬픈 연극을 보고 눈물을 쏟아 슬픈감정을 배출시켜 거꾸로 상쾌함과 기쁨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의학에서의 사하약과 유사한 착상이다 [2]. 반대로 니체는 나약한 음악보다는 강건하고 남성적인 음악이 정신을 위해 더 좋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내 생각에는 카타르시스론은 정신적으로 대체로 건강한 일반인들에게 적용될수 있을것 같고, 오히려 우울증이 심한 사람에게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나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니체의 주장에 따른 “강한 남성적인 음악”이 더 유익하다고 보아 이를 제안하겠다.
위 영상은 우울증 환자에게 유익한 음악의 좋은 사례로 보이는데, 가수 신해철이 작곡한 “그대에게”를 경기예고에서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 편곡하여 연주 및 노래한것이다. 원곡 자체가 응원가로 사용될 정도로 힘차고 강한데 이를 다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바꾸어 웅장함이 더욱 가미되었다. 특히 관현악기들의 연주가 감정적으로 의욕을 돋구어 주는 느낌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음악 자체를 정신에 직접 작용하여 정신을 고르게 하는 교육수단으로 보았는데 [4], 같은 취지로 우울증 환자들이 응원가풍의 경쾌하고 강한 음악을 평소에 자주 듣는 것이 정신을 강건하게 만드는 질환 치료의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유용하리라 예상된다.
여담으로 위 영상을 보면, 구성원 개개인이 조화를 이루어 음악이라는 예술을 현출해내고 있는데, 구성원 누구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을 알수 있다. 구석에서 그리 화려하지 않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단원이라도 그 사람이 빠지면 전체적인 음악은 완성되지 못할것이다. 이를 유심히 본다면 어떤 전체적인 조화와 개개인의 중요성이라는 통찰도 얻을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통찰 역시 우울증 환자에게 중요한 것이다 [5].
미주
[1] 많은 임상심리학(예를들면 ACT치료), 철학, 불교심리학 등에서 이같은 태도를 지지한다.
[2]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마광수 저
[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저, 강두식 역
[4] 적도 또는 중용의 사상, 박종현 저
[5] 이글의 모든 내용은 비단 우울장애 뿐만 아니라 삶의 의욕을 상실케 만들고 정신이 내부로 수렴되는 형태의 정신 질환들, 대표적으로 불안/공황/강박장애에도 적용될수 있을것이다. 다만 양극성장애(조울증)의 경우에는 조증삽화가 심하지 않은 2형 군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있다. 심한 조증과 같은 발산 형태의 질환에는 힘차고 강한 음악이 도리어 해로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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