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중에서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민음사 판 46페이지, 올재 판 35페이지, 볼드체는 내가 한것이며 숫자도 논의의 편의상 내가 붙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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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행복의 순간들을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럼 다른 순간들은 신이 아닌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2.나타나엘이여, 신과 그대의 행복을 구별하지 말라.
3.만약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신을 원망할수도 없는 것처럼 나를 만들어 주셨다고 신에게 감사할수도 없는 일이다.
4.나타나엘이여, 신에 관한 이야기는 오직 자연스럽게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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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과 2의 의미가 미묘하게 충돌하는데, 갑자기 논의의 평면자체가 달라진다. 1에서는 신이 주체이며 행복과 불행을 신이 주는 객체로 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며, 2에서 지드는 갑자기 주체와 객체가 통합이 되는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2를 신은 행복도 주고 불행도 준다는 의미로 자칫 잘못해석할수 있겠으나 분명히 2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시각에 가까운 표현이다.
따라서 4의 해석은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민음사 판의 역자인 김화영 박사는 이에 대해 주석으로 이 표현이 “신에 대해 단순하고 친근하게 말해야 한다는 의미와 살아서 존재하는 자연을 대하듯 말해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조금은 심심한 분석을 한다.
내 생각에 이러한 분석은 잘못된 것 같다. 올재 판의 동일 구절의 번역은 “하느님에 대한 말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해야만 한다”로 되어있다. 올재 판의 번역에는 민음사 판에는 없는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있는데, 이 구절을 감안하고 1에서 3까지의 스피노자적인 분위기, 그리고 이 책의 전체 취지를 고려한다면 4는 “모든 사건에 신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이것을 왜곡시키지 말고, 왜곡 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자연스러움을 지키라”는 의미인것 같다.
김화영 박사의 이 책 본문의 번역은 상당히 탁월한데, 숭고한 문체를 잘 살려 글의 내용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주석에서의 해석에 이처럼 종종 의아한 부분이 있어 읽을때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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