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이소룡?

철학자로서의 이소룡

배우이자 무도인으로 유명한 이소룡을 철학자 혹은 사상가로 분류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는 정말 철학자일까? 실제로 그는 워싱턴대(UOW) 철학과를 다니다 중퇴한 의외의 경력이 있는데,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은 “물이 되어라, 친구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다. 호기심이 들어 몇년전 이 책을 대강 살펴보기도 했었는데, 종합적으로 봤을때 나는 그를 철학자로 보는 것은 많이 과장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위 책은 이소룡의 어록을 담은 것인데, 대강 공감가고 좋은 내용을 말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제목에서 이미 암시되고 있듯이 널리 알려진 동양철학적인 — 주로 도덕경을 중심으로한 노장사상 같은 분위기의 — 철학을 주장하는 것이라 신선한 점은 별로 없다. 학문적인 깊이가 있는 책은 전혀 아니며 인생론 정도의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어느정도 유효하다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이소룡을 철학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무도가 철학이 된다면?

이소룡은 본인이 “절권도”란 이름의 무술 유파를 창시하기도 했는데, 이것의 가치에 대해 헐리웃 연기용일뿐이라는 의견과 정식 무도인의 유파로서 무시할것이 아니라는 의견으로 나뉘는것 같다. 내가 무도인이 아니라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춤이나, 스포츠, 무도(무술) 등과 같이 몸으로 하는 것도 어떤 사상을 표현하거나 정신을 수양할 수 있으므로 그속에 철학적으로 인정될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 하게 든다.실제로 몇몇 무술들을 살펴보니 아주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나름의 어떤 철학적 체계의 구색을 갖추어 놓기는 하였다.

만약 무도의 철학성이 인정될수 있고 절권도가 어떤 정교한 사상을 품고 있다면, 이소룡도 사상가로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

이소룡 어록 분석

이소룡은 여러 멋진 말들을 많이 남겼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그의 어록 몇가지를 살펴보겠다. 파란색은 나의 해석이다. 요새 문학가 앙드레 지드에 관심이 많아 아무래도 두 사람을 많이 비교하게 되었다.

***

인내란,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강렬한 것이다.
: 일반 통념과 다른 이야기인데, 아마도 이소룡은 인내에 이어질 다음의 능동적인 행동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말을 한 것 같다.  
무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소질과 능력이 모자라 좋지 않은 동작을 하고 있는 사람과, 노력을 하지 않아서 좋지 않은 동작을 하는 사람을 반드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며, 후자의 경우 더욱 엄격하게 대하라.
: 교육자 입장에서 매우 좋은 조언이 될것 같은데, 학생의 능력을 파악하여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되는 쪽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승이란 나침반을 쥐어주는 사람이지 데려다 주는 사람이 아니다.
: 이처럼 사실 배움이란 결국에는 스스로 해야 한다.
상대를 마주하고 있을 때 ‘나’는 없다.
: 이 말은 여러 상황에 적용될수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행복을 위해서도 언제나 나를 잊는 상태, 즉 무아의 상태가 좋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의지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를 잊어야지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다. 시선이 달이 아닌 손가락에 집중된다면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없다.
: 본질적인 목표를 지향하라는 말인데, 나는 이 말을 듣고 앙드레 지드가 말한 “중요한 것은 바라보고 있는 사물이 아닌 시선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의 시선은 이소룡의 시선과는 다른 것을 은유하니 햇갈리지 말기를) . 지드의 말이 좀더 구체적이고 이소룡의 말은 사실 원론적인 소리라 양자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어떠한 형태나 구속 없이 마음을 비워라. 마치 물과 같이, 물은 병에 담으면 병 모양이 되고, 컵에 따르면 컵 모양이 된다. 물은 흘러갈 수도 있고 무언가를 파괴할 수도 있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도는 물과 같다”를 그대로 옮겨온 말이다. 
이소룡: 내년의 절권도는 올해와는 다를 거야.
이노산토: 난 지금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소룡: 아니, 내년의 절권도는 올해보다 더 좋을 거야. 내후년에도, 앞으로도 말이지.
:끊임 없는 발전을 추구하고 그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인데, 앙드레 지드의 사상과 일치한다. 
자주 쓸 동작이 아니면 잊어버리고, 필요한 동작이라면 기를 써서 당신 것으로 만들어라.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취사 선택하여 그것에 대해서는 최고가 되라는 말이다.
나는 만 가지의 발차기를 찰 수 있는 사람도 두렵지 않다. 다만, 한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라면 두렵다.
:위 말과 비슷한데 이것이 훨씬 좋은것 같다. 이소룡의 두 명언에는 어떤 “경제성의 원칙”같은 것도 느껴진다. 
제게 싸움을 잘하냐고 물어봤을 때 제가 긍정한다면 제가 거만하다고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제가 부정한다면 겸손해 하지 말라고 하겠죠.
:인간의 보편적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싫은 사람은 어떻게든 싫은 이유를 만들어 낸다는, 즉 인간의 이성은 감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내가 1인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2인자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여기있는 모든 명언중에서 수사적으로는 가장 멋진 표현인데, 겸손과 자신감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멋진 말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할 줄 알아야만 한다. 의지만 갖추고는 충분하지 않다. 행동할 줄 알아야만 한다.
:지행일치를 말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동일하다.
찻잔의 효용성은 그것이 비어있을 때 생긴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이것도 앙드레 지드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언제나 어떠한 만족을 위한 “준비상태”에 있는 유연함을 가지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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