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의 취지
대학의 영화학과 코스가 좋은 영화 작품을 만드는데 어느정도 영향력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일단 나는 순수예술 지향의 영화에 있어서 영화학교의 역할에 대해 막연히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사실일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약식 검증을 해보기로 하였다.
칸 영화제의 황금 종려상(대상) 수상작을 연출한 감독의 대학 전공을 조사하여 그 분포를 파악한다. 이미 조사된 결과가 있는지 국내외 자료들을 찾아보았으나 의외로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일일히 직접 조사하여 통계를 내보았다.
너무 오래된 과거에는 대학 진학률이 낮을수 있으므로 비교적 근래인 1970년부터 2023년까지의 수상작을 조사 대상으로 하였으며, 중퇴자는 제외하고 최종졸업자만 포함시켰다. 그리고 한 사람이 여러 전공을 가진 경우 중복하여 산입했다. 예를 들면, 영화학 학사와 철학 학사와 예술학 석사 학위를 가진 경우는 세 전공 모두에 중복하여 산입하는 식이다 (단, 대학 졸업자는 고졸에 중복하여 산입하지 않았다).
한 명의 감독이 여러 회에 걸쳐 수상한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도 중복하여 산입했다. 즉, 2회 수상을 한 경우 두번 산입하였다. 학력 정보는 위키백과의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버전을 기준으로 하였다. 의외로 졸업 여부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 경우는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산입하였다. 이 때문에 본 조사 결과에 오차가 있을수 있음을 밝혀둔다.
조사 결과
조사 결과는 위 그래프와 같다. 일단, 영화학 학.석사 학위자의 수가 총 19명으로 단일 전공으로는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학 전공과 좋은 작품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한 걸까? 답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영화학 전공자는 가능한 영화업계로 진출하려고 시도할것이라는 점에서 전체 수상자의 30% 미만의 비율이 꼭 높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예술 분야의 수상자 통계 — 이를 테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중 문학 전공자의 비율 — 혹은 다른 직업군의 해당 전공자 비율을 조사하여 비교해 보아야 한다.
여기서는 사법시험 합격자 전공 분포와 비교해보겠다. 사법시험은 전공을 불문하고 응시할수 있는 완전 개방형 시험이고 전공별 통계가 명확하게 집계되어 있고, 합격율이 매우 낮으므로 마찬가지로 수상 확률이 매우 낮은 칸 영화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통계상 2008년~2017년 10년간 사법시험 합격자중 법학 전공자는 82%로, 칸 영화제에서의 영화학 전공 30%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일단은 영화학 전공이 칸 수상에 끼치는 영향은 “애매하다”고 할수 있겠는데, 좀더 정확한 판단은 활동중인 모든 영화감독의 전공별 숫자 대비 수상자 각각의 전공별 숫자의 비율을 조사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같은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사 결과중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고졸자(대학 중퇴자 포함)의 비율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렸을때부터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아주 컸던 사람들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곧바로 영화나 혹은 예술업계에 뛰어든 경우였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이나 실무 경험만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드는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나는 조사 전에는 철학과 순수 문학 전공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각각 1명과 2명에 불과했다. 이 조사 만으로 정확한 이유를 알수는 없으나 추측컨데, 철학과 문학 전공자 중 영화업계로 유입되는 절대치 자체가 아주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공계 전공자는 단 두명에 불과했다. 이공계 학문이 영화적 사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영화업계로 유입되는 절대치 자체가 아주 적어서 그렇다고 볼수도 있겠다.
박사학위 소지자는 전무했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영화학의 최고학위로서 석사까지만을 제공해서 그렇기도 하고, 감독활동에 지나치게 아카데믹한 박사과정은 불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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