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영화영상학 이황석 교수의 칼럼에 대한 비판

개인적으로 “직관”에 관심이 많은데, 우연히 이와 관련한 어떤 교수가 쓴 뉴스 칼럼이 떠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칼럼 글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를 품고 있기도 하고, 마침 영화학과 교수가 쓴 글이기도 해서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지 간단히 살펴보려한다.

해당 뉴스 칼럼은, 한림대 영화영상학과 이황석 교수가 오늘자 아시아투데이에 기고한 “직관에 대하여”라는 글이며, 해당 뉴스의 링크는 아래와 같다.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31003010000571

1.먼저, 전체적으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지식들을 난삽하게 늘어놓는 식으로 서술되었다. 주제를 뒷받침하여 효과적으로 주장이 이루어지려면 마치 깔데기에 물을 붓는거 처럼, 글이 진행될수록 주제로 집중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식의 글은 독자들의 정신을 분산시키게 된다. 상당히 많은 칼럼들이 이렇게 성의없는 방식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첫번째 문단부터 논리적인 오류가 있는데, 글쓴이는 여기서 직관이 “불가능”하다고 명시적으로 말해놓고서, 정작 이 문단 이후부터는 직관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글을 진행하고 있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글쓴이는 사람들이 나약해서 직관을 사용한다는 말을 하는데, 글쓴이의 논리대로직관이 사물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방식이라면 오히려 나약한 자는 독립적이지 않으므로 직관을 사용하지 않을것이다. 실제로 인간이 직관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3.다섯번째 문단에서 글쓴이는 불교의 돈오점수를 “깨달음이 없는 수행은 무의미한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돈오점수나, 반대되는 이론인 돈오돈수나 모두 공통되게 깨달음을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글쓴이가 말한 위 문장은 돈오점수의 핵심이 될수 없는 뜬금없는 소리다. 아울러 글쓴이는 돈오점수를 직관과 어색하게 연결시키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글쓴이는 위 이론과 불교철학에 대해 이해가 거의 없는 사람으로 추측된다.

4.여섯번째 문단에서 글쓴이는 프로파일러를 “율사”라고 지칭하고 있다. 율사는 법률가를 뜻하는데, 프로파일러는 경찰공무원이므로 율사에 해당되지 않는다. “율사”란 단어가 대학교 교수직에 재직중인 자가 모를정도로 어려운 단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런 기초적인 오류를 범하다니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다. 아울러 글쓴이는 프로파일러들이 직관을 쓰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 경찰들은 소위 “감”이라는 직관을 많이 사용하고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5.일곱번째 문단에서 도대체 피안의 위치와 종교인의 직관이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것인지 도통 알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두 문장을 억지로 연결시켜 놓고 있다.

6.마지막 문단에서 글쓴이는 뜸금없이 사회현실 비판을 촉구하는 결론으로 어색하게 글을 마무리 짓고 있는데, 참 궁색해 보인다. 본론에서 무슨 말을 제대로 했어야지 이런 결론이 설득력이 있을게 아닌가?

전체적으로 교수인 본인이 직접 쓴 글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수준이 낮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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