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종종 80~90년대가 정치풍자와 사회비평의 전성기였으며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다는 말을 보곤한다. 이같은 주장들을 들어보면 당대의 코미디가 사회 풍자의 모범이고 이상향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 KBS유튜브 채널에서 과거 방송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위 주장이 사실인지 검토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작고하신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중심이 된 콩트물들이 이 당시의 풍자물로 유명한데, 김형곤씨가 스승으로 나와 제자들과 문답을 하는 와중에 슬쩍슬쩍 당대 시사문제들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런데 이 비판이라는 것이 깊이가 얕아 수박 겉핱기 식으로 대강 넘어가는 식이고, 무엇보다 비판의 관점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유교적이고 보수적이라 대단히 낡아보인다. 물론 당대의 윤리적 한계라는 것이 있겠지만 이 점을 고려해보아도 “바르게 살자, 착하게 살자” 류의 공익광고물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추정인데, 나는 이때의 풍자물에서 어떤 “가이드 라인”같은것이 느껴진다. 정부에서 사전에 어떤 기준을 암묵적으로 제시했고 이 기준에 벗어나지 않는 수준을 지켜 제작을 한 느낌이다. 이 기준이 당대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감안할때 지금보기에도 꽤나 자유롭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허나 이것은 당대의 정부가 아예 군사정권이었거나 문민정부라 하여도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아직 그대로 이어받은 상태였기에 이 점에서 비롯된 일종의 “반사적 효과”라 보아야 한다. 쉽게 말해, 실제 현실세계에서의 사회 분위기가 과하게 억압된 상태라서 이러한 코미디에서라도 풍자와 비판을 허용해야지 안그러면 마치 압력밥솥 터지듯 사회가 폭발할것이라는 것을 당대의 정부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누구나 유튜브, 인터넷등지에서 제법 자유롭게 사회 비판을 할수 있기에 제도권내의 코미디 방송의 풍자적 역할이 많이 축소된 상태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시사비평도 하는등 코미디의 수준이 높았는데 현재는 수준이 떨어졌다는 비판은 수용하기 힘든것이다.
사실 예술에 있어서 풍자라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비록 풍자가 사회 문제 자체를 환기시키는 기능은 하겠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역할은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 풍자물들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어 사안을 본의아니게 왜곡시키고 대중의 강렬한 감정만을 고양시킨다는 부작용도 가지고 있다.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