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모순율의 위반에 너그러운가?

연구의 취지

여러 예술품들 속에서 — 시 작품의 경우에 특히 그러한데 — 참인 모순을 긍정하는 듯한 자세를 자주 엿볼수가 있다. 이같은 태도는 단순히 수사학적인 표현을 넘어서서 때로는 창작자가 현실 세계(universe)가 정말로 모순율에 위반된 상태로 존립할수 있다고 믿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에 따라 나는 강한 예술적 취향이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태도”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 해왔는데, 이를 약식으로 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설문조사 기능을 이용하여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의 과정

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들은 채널 특성상 영화를 비롯하여 예술 일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로 구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과거 미국의 어떤 저널에서 전문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약간 변형한 것이다.

 

***

무언가가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인 경우가 가능할까요? 예를 들면, 키가 크면서 동시에 키가 작은 경우, 죽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죽지 않은 사람인 경우, 검정색이면서 동시에 검정색이 아닌 경우가 가능할까요?

1.머릿속 논리로도 불가능하고, 현실세계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17%

2.머릿속 논리로는 가능한데,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23%

3.머릿속 논리로도 가능하고, 현실세계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60%

총 53명 투표.

***

일단 전문 논리학 용어로 된 영어 원문을, 통상적인 한국어로 바꾸다 보니까 그 의미가 다소 변형이 되었고, 실수를 한 부분도 있다. 이들을 간단히 밝히자면, 먼저 질문에서 “키가 작은 경우”는 엄밀하게는 “키가 크지 않은 경우”라고 바꿔야 하겠다. 그러나 이 부분은 조사 결과에 큰 영향은 없을것이다. 그리고, 질문 전체는 형식 논리학의 모순율을 나름 쉬운 예를 들어 풀어 설명한 것인데, 내용이 모호해져서 사람에 따라 약간씩 질문의 취지를 다르게 받아 들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그러나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아주 폭넓게 “사고방식”을 조사하기 위함이므로 이같은 부분이 아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것이라 믿는다.

선택지에서 “머릿속 논리”는 비단 “형식 논리”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광의의 “사고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한것이다. 응답자에 따라 이를 오해할수도 있겠는데, 실제로 이 단어를 형식 논리에 가까운 의미로 받아들인 한 구독자가 “머릿속 논리로는 불가능한데, 현실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선택지가 없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어쨌든 이 부분 역시 협의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만큼 형식 논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 볼수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다른 재미있는 댓글로, 한 구독자는 맹인과 정상인의 색 인지가 다름을 이유로 질문에서의 모순적 상황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주었는데, 이는 일종의 주관적-상대주의적인 진리관에 해당된다. 이런 케이스까지 내가 상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폭넓게 “사고방식”에 포함이 되고 여기에 포함되는 응답자는 아마도 3번을 택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추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설문에서 예시로서 “삼각형이면서 동시에 삼각형이 아닌 경우가 가능한가?, 또는 동그란 삼각형이 가능한가?”를 들었으면 보다 분명하게 의미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조사 결과 분석

이제 전문 철학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던 원래의 조사 결과와 함께 선택지의 함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이 조사 결과는 나의 유튜브 구독자 대상의 결과와는 완전히 달랐는데, 대략적으로 1번: 70% ,  2번: 5% , 3번: 10% 였다 (이 조사에서는 기타 설문들이 몇개 더 있는데, 이들은 편의상 생략하겠음. 그리고 다수결에 의해 1번이 정답이라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본 설문조사에는 정답이란 것이 없다.)

여기서 1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인 형식 논리학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즉, 모순율에 따라 참인 모순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2번과 3번은 “양진논리”를 인정하는 입장이라 할수 있겠는데, 철학자 그레이엄 프리스트가 현대 양진주의 논리학의 대표적인 학자이고, 불교의 중론, 헤겔/마르크스의 논리학도 폭넓게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2번과 3번의 차이는 현실세계와 논리간의 일치 여부에 관한 세계관 차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철학계에서는 아무래도 전통적인 1번의 영향력이 여전히 대세이며, 양진논리는 서양의 소수파 학자들이 주장하거나 아니면 동양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당연한 결과가 나온것이다. 그렇다면 내 유튜브 구독자 대상의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나의 많은 구독자들이 희귀한 양진논리학에 심취하여 위와 같은 답변을 했다고 보기는 무리이고, 위 “연구의 취지”에서 밝힌바와 같이 예술적 취향이 강한 덕분에 모순율의 위반에 대하여 거부감이 덜하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끌리는 경우가 많았던게 아닌가 싶다.

유의사항

본 약식 연구는 유튜브 간이 설문조사를 통한것이며 엄밀한 통계학적 방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결함을 갖는다. 사실 진짜 연구라기 보다는 평소에 궁금하던것이 마침 생각나서 재미삼아 겸사겸사 실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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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응답

  1. 충정로 아바타
    충정로

    안녕하세요, 다수 구독자가 3번을 택한 이유를 감정적으로 끌려서 라고 상정하신 근거가 궁금합니다! 제 생각엔 구독자들이 전문 철학자가 아니므로 실증논리학(맞나요??)의 P->Q 개념 따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선택했을뿐 나름의 논리(=과학적인 사고)를 갖고 판단했을 것 같아서요. 가령 저는 검다, 크다 등의 개념이 사람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으므로 검정색이면서 검정색이 아닐 수 있다라는 명제가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문장 사이에 임의로 주어를 넣은 것 같긴 합니다. 누군가에게 감정색이먼서 누군가에게 검정색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1. 일단 3번 응답의 이유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A.해당 설문이 모순임을 인지하였는데, 그것을 허용하는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경우.

      B.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진리가 결정된다. 따라서 모순이 참일수도 있다. (이것은 본문 맹인 어쩌고 부분에 해당되고 충정로님의 생각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
      제가 설문조사를 했을 당시에 이 설문을 이해하는데 딱히 특별한 논리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모순 같은 개념은 고등학교 이하 과정에 있으므로) 구독자들이 3번으로 응답한다면 A의 이유로 선택할꺼라고 상정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순임이 인식이 되지만 예술적 기질이 크면 그런 논리적인 면에 구속받지 않고 마음에 들면 선택을 할것이다. 왜 마음에 드냐면 왠지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라고 생각을 한거죠. 죽으면서 사는것 이런 판타지한 개념은 시나 소설같은데에 종종 등장합니다.

      그런데 아마 B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것 같습니다. 본문에 짧게 나와 있지만, 이 경우도 큰틀에서는 위 A와 유사하게 “논리적인 면에 구속받지 않고 약간 신비주의적인 가치관”이라고 보아도 될것같습니다. 사람에 따라 진리(물리적인)가 달라진다는 발상은 상당히 신비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3번 응답자중 A, B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잘모르겠고, 참고로 이 설문은 어느 번호를 선택하는지, A,B의 어디에 해당되는지와 관련하여 정답이나 우열이 없습니다.

      아울러 본 설문조사는 본문에도 써놨지만 정밀하게 실험을 한것이 아닙니다. 지금 다시보니 예전보다 훨씬 더 허술해보이네요.ㅎㅎ 설문내용을 좀더 명확하게 했어야 했는데 오해의 여지가 많은것 같습니다.

      아무튼 좋은 의견 감사하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1. 충정로 아바타
        충정로

        ‘진리’라는 개념은 생각을 못 했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글 또 올려주세요:-D

        1. 네, 참고로 이곳은 조금 진지한 글들이 올라오고, 이곳 말고 제 인스타(본 홈페이지 메뉴에 인스타 로고)에는 좀더 가벼운 글들이 종종 올라가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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