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루시카의 노래, 치노카테에 관하여

 

일본의 요루시카란 음악 밴드에서 작사,작곡,노래한 <치노카테>란 곡인데, 이 제목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의 일본어 발음을 가타카나로 쓴것이다.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지상의 양식에 모티브받아 만들어진 곡인데 이 글에서는 가사에 대해서만 분석해보겠다.

아래 가사는 나무위키에서 일본어 원문은 빼고 번역문만을 가져온것이다. 파란색 글은 나의 주석이다.

***

석양을 집어삼킨
컵이 루비 같아
마시다 만 토요일의 생활감을 탁자에 두고
꽃병의 하얀 꽃
너무 상냥해서 시든 것 같아
정말 소중했는데
슬슬 바꿔야겠어
아, 석양.
정말 아름답구나
=> 태양이라는 자연물을 도입하고 있는 것은 지상의 양식에서 나타난 자연주의적인 면을 옮겨놓은 것이다. 여기서 “꽃병의 하얀 꽃”은 화자의 상대방인 연인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꽃을 꽃병에 갖힌 형태로 묘사한 것은 화자가 연인을 구속하고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꿀때가 되었다는 말로 보아 연인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상태인듯하다.  
지금으로부터 앞날의 좀 더 앞을 그린 지도는 없는 걸까
망설이지는 않을까
그래도 괜찮으니까
망설여도 괜찮으니까
=> 여기서 “지도”는 “계획”이란 심상을 떠올리게 만들므로 지상의 양식의 사상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리고 지드라면 망설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망설이지 않을것이다.  
사실은 필요없던 물건도
소파도 책도 버리자
밖으로 나가자
=> 지상의 양식의 유명한 마지막 구절 “책을 버려라”를 그대로 옮겨온것이다. 참고로 영화감독 데라야마 슈지의 작품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도 이 구절을 따온것이다.  

사실은 우리의 마음은 머리에 있었어
뭔가 잘못한 건지, 지금은 글자 속에 있어
=> 언어에 갖힌 자아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꽃병의 하얀 꽃
어느샌가 시들어 버린 것 같아

정말로 소중했었다면
애초에 사지 말지 그랬어
아, 졌어.
그래도 아름답구나
=> 여기서 화자는 꽃을 사지 말걸 그랬다고 말한다. 꽃이 연인을 상징하므로 애당초 만나지 말걸 그랬다는 말이다. 지드라면 시드는 것을 개의치 않고 꽃을 계속 샀을것이다. 애당초 이 노래의 화자와 같이 꽃병에 머물고 있지 않을것이다. 이같은 화자의 자세는 곡의 후반부에 가서 변화를 일으킨다.  

줄곧 이루고 싶던 꿈이 당신을 얽매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꿈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 지상의 양식의 “구속받지 않는 자세”를 표현한것 같다. 그러나 마치 통속적인 자기개발서류의 “괜찮아 다 잘될꺼야”수준으로 들려 책이 보여주는 사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지드라면 “꿈을 포기해도 괜찮아”가 아니라 거꾸로 계속 꿈꾸라고 말할것 같다. “포기”라는 단어가 지상의 양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정말 갖고 싶었던 물건도
가방도 펜도 버리자
밖으로 나가자

네가 바라하던
자신을 버리고 말았어

정말 소중했는데
이제서야 떠올려 냈지

꽃병의 하얀 꽃
시든 줄도 몰랐어

정말 소중했던 건
꽃을 바꾸는 사람인데
=> 화자의 변화를 말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1연과 4연의 표현이 모순인것처럼 보이지만 1연의 “자신”은 이기심 또는 소유욕을, 4연의 “사람(자기)”은 자아의 본모습 혹은 본질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부분은 마치 통속적이고 지루한 도덕관을 떠올리게 만들어 지상의 양식이 보여주는 사상과 크게 차이가 난다. 화자는 지상의 양식에서의 “자아의 멸실”과 “헐벗음”이란 개념을 오해하고 있다. 지드라면 애당초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을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를 떠날것이다. 이 떠남은 1연의 버림과는 다르고 능동적인 성격을 갖는것이다.  
아, 잠깐만.
정말로 가는 거구나
지금으로부터 앞날의 좀 더 앞을 그린 지도는 없는걸까
망설이지는 않을까

그래도 괜찮으니까
망설여도 괜찮으니까

사실은 필요없었던 물건도
소파도 책도 버리자
그래도 괜찮으니까

너의 밤을 계속해서 비추는 큰 빛은 있는 걸까
그럼에도 떠나는 걸까
그래도 괜찮으니까
떠나도 괜찮으니까

다 읽고 난 후에는 부디 눈을 열어서
이 책을 버리자, 밖으로 나가자

***

 

전체적으로 이 곡이 <지상의 양식>의 철학을 담았다고 보기에는 무리이며, 오히려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체념하기”류의 통속적 사상들과 별반 다른점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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