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현대적 해설 | 4.플롯에 관하여 – 2

책의 해당 부분

제12장 ~ 제15장 까지

 

공감을 부르는 플롯 구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플롯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독자(관객)의 공감을 부르는 플롯을 만들어라”로 요약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공감은 구체적으로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인데, 즉 좋은 플롯은 관객들이 극을 보고나서 “두려움의 감정”과 “불쌍한 감정”에 흠뻑 젖어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정에 푹 빠져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효과가 발생될수 있는거죠.

관객이 극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나에게도 저런일이 일어나면 어쩌나”하는 공포감과 “마치 내게 일어난 일 같아 불쌍하다”라는 연민의 감정은 모두 나를 기준으로 극이 “모방”하고 있는 유사한 타인이나 상황으로 부터 발생되는 것들입니다. 뇌과학적으로는 이렇게 타인이 겪는 유사한 상황에 공감을 하는 것을 “거울뉴런”이라는 신경세포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어쨌든 좋은 플롯은 원활한 공감 작용을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해하는 경우 몇가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쁜놈이 불행을 겪으면 고소한 느낌이 들지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좀 착한게 좋습니다. 불행한 사건도 주인공이 크게 잘못하여 발생한 것이면 관객은 샘통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정도 우연하게 운명적으로 발생하는 불운이 좋습니다.

특징적인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의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신들을 알려진 그대로 묘사하라고 충고합니다. 예를 들면 영웅 아킬레우스는 영웅답게 용감하게 묘사해야지 새롭게 한답시고 찌질하고 꼬장꼬장하게 등장시키면 안된다는 소립니다.  이것을 현대의 독자들이 언뜻들으면 너무 진부하지 않나? 좀 새롭고 참신하게 바꿀수도 있는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은것이 우리 입장에서 만약 어느 영화감독이 이순신 장군이 사실은 왜놈 압잡이 였고 부모님께 쌍욕하고 다녔던 후레자식이었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가정해봅시다.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 관객의 평균적인 감성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조언을 한것이지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극의 공감을 방해한다는 취지에서,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가 그토록 강조하는 톱니바퀴처럼 치밀한 극의 개연적 구조를 깨뜨리는 대표적인 방해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키나(mechane)는 그 이름에서 느낌이 오듯이 기계장치를 말하는 것인데, 기계장치를 타고 등장하는 신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는 의외로 과학 공학 기술이 꽤나 발달했었는데, 기중기 같은 것으로 사람을 줄에 매달아 공중에서 등장시키는 연출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이 등장해서는 극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엔딩 보는 식으로 창작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입니다.

예를 들면 슈퍼맨 영화에서 슈퍼맨이 악당에게 집에서 붙잡혀 죽어갈려던 찰나에, 아침에 잠깐 통화했던 배트맨이 걱정이 되어 집에 방문을 하였고 다행히 배트맨의 도움으로 살아났다면 이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닙니다. 아침에 통화를 했었고, 배트맨도 종종 슈퍼맨과 함께 출연한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경우에 별안간 슈퍼맨 할아버지가 떡하니 날아와서 악당들을 다 죽이고 구해준다면 이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슈퍼맨 할아버지같은 것은 슈퍼맨 시리즈에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어서 금시초문이고 너무 뜬금없기 때문이죠. 이같은 설정은 극의 개연성을 망치고 관객에게 공감이 아닌 황당함만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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