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EBZINE — 3호

편집자의 말

이번 호에서는 한나 님의 영상과 관련하여 “신비주의의 두가지 방향” 그리고 수첩이 님의 영상과 관련하여 “영화 제목을 짓는 7가지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신비주의의 두가지 방향

한나 님의 영상을 보고 —

한나 님(이하 영상 제작자라 함)의 본 영상은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라는 숫자 42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영상 제작자는 이 숫자의 의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절대온도 273도와 관련한 것 그리고 원주율과 관련한 것, 이렇게 두가지 가설에 대해 말한다.

사실 이 숫자 42는 소설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가 소설속 장치로서 만든 허구의 개념인데 영상 제작자는 은연중에 이 숫자가 현실세계속의 진리인 것처럼 혹은 최소한 영상내에서는 진리인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도 일단 이 숫자 42가 진리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 진리의 의미를 밝히는 수단으로서의 수비학에 대해 논하려 한다.

 

신비주의의 아류로서의 수비학      

 

수비학은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한가지 갈래로서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를 그 기원으로 한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세상 만물이 어떤 수학적 패턴에 따라 필연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수비학의 모토인데, 현대에는 대표적인 유사 과학(pseudo-science)으로 취급되고 있다.

영상 제작자가 주장하는 두가지 가설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설 1. 절대온도 273도의 각 숫자를 곱하면 2 x 7 x 3 = 42. 따라서 절대온도와 진리의 42는 어떤 관계가 있다.

가설 2. 원주율 3.14의 각 숫자를 곱하면 3 x 14 = 42. 따라서 원주율과 진리의 42는 어떤 관계가 있다.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42의 의미에 대해 밝히지 않고 사망하였는데, 그의 본의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42를 진리로 가정하고 이 진리에 대한 의미를 밝힌다는 관점하에서 위 두가지 가설은 모두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다. 그 이유는 “임의성” 때문인데,  사실 어떠한 사칙 연산을 통해 숫자 42가 도출되는 경우의 수는 의외로 많이 있다. 위 두 가설은 이들중 절대온도의 경우와 원주율의 경우를 “임의적”으로 선택한 것 뿐이다. 그리고 “임의적”으로 나눗셈, 덧셈, 뺄셈도 아닌 “곱셈”을 선택하였다. 원주율의 경우는 왜 3 x 1 x 4 도 아닌 굳이 3 x 14일까? 이것도 42에 맞추어 “임의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절대온도를 어찌어찌 연산처리를 하여 42가 나온다고 해서 절대온도와 42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찌어찌 연산처리”라는 과정이 필연성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 가설들은 모두 “임의적”으로 마치 필연적인 연관성이 존재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수비학적인 상상들은 우리에게 대단히 매혹적으로 다가오는데 마치 진실인 것만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착각은 수학이 가진 정확성에 기인한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결과를 도출하는 수학의 정확성 덕분에 어떤 수학적 처리를 거친 결과물은 우리에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듯한 일종의 쾌감을 주는 것이다. 수비학에서의 이러한 감정상태가 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만든다.

 

투자시장에서의 수비학 — 엘리어트 파동이론       

 

이제 수비학에 근거한 이론이 어떻게 현실세계와 동떨어지게 되는지에 대한 실증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투자시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엘리어트 파동 이론”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수비학에 근거한 투자 분석 기법이다. 이 기법은 미국의 회계사였던 엘리어트란 사람이 1946년 “자연의 법칙 – 우주의 신비”란 책에서 소개한 것인데 1987년 블랙먼데이 사건(미국의 증시 대폭락)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유명해진 이후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어지고 있다.

 

|엘리어트 파동 차트의 예시|

 

엘리어트 파동 이론의 골자는 주가가 5개의 상승 파동 이후에 3개의 하락 파동을 거쳐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되며 다시 각각의 파동은 1, 2, 3, 5, 8, 13, 21, 34, 55, 89, 144개의 작은 파동으로 세분화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이 파동의 연쇄를 통해 쉽게 미래의 주가 동향을 예측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엘리어트가 왜 굳이 수많은 수열중에 1, 2, 3, 5… 형태의 수열을 파동으로서 제시했는지가 문제된다. 이것이 바로 본 파동 이론의 수비학적인 특징인데, 엘리어트는 “임의적”으로 “피보나치 수열”을 주가 변동의 파동으로서 선택한다.

이 피보나치 수열은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고안한 것으로 n번째의 수와 n+1번째의 수의 합이 n+2번째의 수가 되는 수열을 말한다. 언뜻 신비롭게 보이는 이 수의 나열은 원래 토끼의 왕성한 번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엘리어트는 토끼의 번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주가가 필연적으로 변동된다고 주장한것일까? 도대체 토끼의 번식과 주식시장은 어떤 관계가 있는것일까?

물론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엘리어트는 과학적이고 신비로운 규칙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열 하나를 임의로 골라잡아 “자연의 법칙 – 우주의 신비”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서 책을 쓴 것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엉터리 이론이 1987년 블랙 먼데이를 정확히 예측할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운”인데, 주식시장에는 수많은 참여자들이 있고 이들은 각자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므로 엉터리 이론이라 해도 운이 좋아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가끔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같은 운이 계속 따르는 것은 아니므로 현재는 엘리어트 파동이론으로 투자 성과를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신비주의의 건강한 방향 — 상상력의 원천

 

지금까지 신비주의의 신통치 않은 한가지 방향인 “수비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신비주의는 언제나 해로운 결과만을 낳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사실 위대한 발견의 단초는 신비주의의 신비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역사적으로 많이 있다. 즉, 신비주의의 신비감이 건강한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한가지 예로 아이작 뉴턴이 고안한 고전 역학의 핵심을 들수가 있겠다. 여기서 뉴턴은 관성을 만드는 질량과 중력을 만드는 질량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뉴턴은 어떤 이유에서 두가지 상이한 질량을 같은 것으로 보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뉴턴은 왠지 두 개념이 같은것이라는 “신비한 감정”을 느꼈던거 같다. 뉴턴의 이 감정은 수백년후 아인슈타인에 의해 논리적으로 사실임이 증명된다.

신비주의가 건강함과 병적임 사이에서 어느쪽으로 발현되느냐가 문제인데, 이는 평소에 쌓아온 이성적 훈련의 바탕에 달린 문제인것으로 보인다. 즉, 어떤 사람의 정신이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다면 이 정신으로 부터 비롯된 신비주의적인 착상이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위 뉴턴이 그런 예이다.

 

참고문헌

[1] 신비주의와 논리, 버트런드 러셀 저
[2]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존 J 머피 저
[3] 기계학습을 다시 묻다, 레슬리 밸리언트 저

 


영화 제목을 짓는 7가지 방법

수첩이 님의 영상을 보고 —

 

수첩이 님(이하 영상 제작자라 함)의 영상은 책을 쓰고자하는 초심자를 위한 가이드 성격의 영상인데, 집필 작업의 편의를 위해 “부제”를 마음속에 염두해두라는 실용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부제는 말 그대로 주 제목에 부수적으로 덧붙어 책의 핵심을 간략히 설명해주는 제목이다. 주제와 다소 비슷하긴 하지만 부제도 책의 표지에 인쇄되는 제목인지라 어느정도 보기좋게 가공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실 주제 대신에 꼭 부제를 염두해둘 필요는 없지만 영상 제작자가 부제를 제안한 것은 본 영상이 “글쓰기 초심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초심자들이 자신이 저술할 책들과 비슷한 기존의 출판 서적들의 부제를 참고하여 좀더 쉽게 책의 내용을 구체화할수 있다는 것이 영상 제작자의 주장인데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의 제목을 짓는 7가지 방법들

 

책에서도 그러하지만 영화에서도 제목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영화에 있어서 제목이 갖는 의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내용을 암시해주는 홍보 수단으로서의 효과가 있다는 점, 둘째는 난해한 예술 영화에 있어서 작품의 제목이 내용 해석의 단서가 되는 열쇠의 기능을 할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영화의 제목을 만들때 도움이 될수 있게 시중의 영화 작품들을 귀납적으로 분류하여 제목의 유형들을 정리해보았다.

 

1.스토리 전체를 요약하는 제목짓기

영화의 스토리 전체를 요약하는 형태로 제목을 짓는 방식으로서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는 방식중 하나이다. 아래 예시 작품들을 살펴보자.

화양연화
미션 임파서블
춘몽
한여름의 판타지아
비포선라이즈

경마장 가는 길
최악의 하루 

여기서 <비포선라이즈>는 연애 행위를 태양(sun)으로 상징한후, 태양의 떠오름(rise)을 통해 본 작품이 시리즈중 첫번째인 “연애의 시작”을 그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비슷하게 <경마장 가는 길> 역시 고도의 상징적 기법이 사용된 제목이다. 이 영화에서 경마장이란 공간은 실제의 공간이 아닌 무언가를 상징하는 목적에서 사용된 것이다.

 

2.핵심 키워드 중심으로 제목짓기

영화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정하고 이를 제목으로 삼는 방식이다. 스토리 전체를 요약하는 방식보다 좀더 강렬한 느낌을 관객에게 줄수 있다. 아래 예시 작품들을 살펴보자.

우연과 상상
헤어질 결심
원초적 본능

여기서 <우연과 상상>, <원초적 본능>은 스토리를 이끄는 구성 요소가 되는 추상적 개념을 사용한 제목이다. <헤어질 결심>은 영화의 핵심 시퀀스 부분을 제목으로 사용한 예이다.

 

3.등장인물로 제목짓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제목으로 삼는 방식이다. 등장인물의 영화내 비중이 대단히 크거나 등장인물 자체가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에 주로 이용된다. 구체적으로 등장인물의 이름, 직업, 수식어를 사용한 묘사 등이 사용될수 있다.

철도원
오목소녀
소설가의 영화
록키
해변의 폴린느
몽소빵집의 소녀

 

4.배경 장소로 제목짓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제목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영화가 독특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거나 배경이 갖는 의미가 큰 경우에 사용되는 방법이다.

밀양
후쿠오카
타이페이 스토리
동경 이야기
바닷마을 다이어리

여기서 <타이페이 스토리>와  <동경 이야기>에는 각각 지역에 뒤이어 “스토리(이야기)”라는 단어가 덧붙여졌다. 타이페이와 동경은 대도시로서 지나치게 보편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이렇게 끝에 “스토리(이야기)”를 덧붙여 줌으로써 이러한 보편성을 희석시키고 사밀함을 추가시킨 것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구체적인 지역명 대신 “바닷마을”이라는 일반 명사가 사용되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일반 명사가 갖는 보편성을 희석시키고자 “다이어리”라는 사밀성을 내포한 단어가 덧붙여졌다.

 

5.상징적 소재로 제목짓기

영화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사물이나 사건등의 어떤 소재가 존재하고 이 소재가 강한 상징성을 갖는 경우에 이를 이용하여 제목을 만들수도 있다. 상기 “2.핵심 키워드 중심으로 제목짓기”는 영화 내에서 현시되지는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직접 등장하는 사물이나 사건이 사용된다는 차이가 있다.

산딸기
녹색광선

 

6.영화속 핵심 대사로 제목짓기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작품 <마리아에게 경배를>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대사 그대로를 제목으로 삼은 경우이다. 이 대사 자체가 영화를 상징할수 있는 의미있는 대사이며 관객은 영화의 끝에서 이처럼 의미있는 대사와 조우하며 비로소 영화의 제목이 갖는 의미를 깨닫고는 놀라게 된다. 흔히 사용되는 방식은 아니지만 다채롭고 신선한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고려해볼만한 방식이다.

 

7.즉흥적으로 제목짓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는 그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식당 간판에 착안해서 지은 제목이고 <그 후>라는 작품은 영화 촬영지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우연히 권해준 소설책의 제목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차용한 것이다. 모두 별다른 고민없이 이루어진 즉흥적인 착상이 그대로 제목으로 이어진 것인데, 원론적으로 이같은 방식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화의 제목은 중요한 기능들을 갖기에 이 기능들이 최대한 발휘될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그의 작품들은 각본단계에서 이미 우연성과 즉흥성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이같은 특징들이 작품의 제목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하하>와 <그 후>라는 제목 자체가 영화의 내용과 잘 어울리므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제목임에도 제목 본연의 기능을 비교적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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