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에 대한 초보자(?)용 간단 소개 글

아래는 지금 개정판 작업중인, 마광수와 관련된 나의 저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글이다. 마광수 교수에 대하여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해보았다. 마광수 교수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여기에 수록해 둔다.


마광수그는 누구인가?

아마, 마광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중 하나 정도의 느낌을 받으실 껍니다.

‘즐거운 사라’란 소설써서 감옥간 사람 또는

변태 교수 또는

야한거 쓰던 교수 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던 사람.

이 정도로 보실 텐데 모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오해를 많이 받아온 사람이지요.

1.마광수 교수의 철학

마광수 교수의 사고방식을 단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에게 솔직하자” 입니다.

근데, 이 생각의 근원이 “사람이 정직하게 살아야지, 그래야 착한사람이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고 “자신에게 거짓되면 병난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발상”에 근원을 둡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니, 그는 위선자들을 엄청나게 혐오합니다. 그리고 마광수 교수 본인이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니, 자기는 야한게 좋더랍니다. 야한거 중에서도 각종 패티시한 것들이 좋더랍니다.

이 철학을 문학에도 적용합니다. 따라서 문학작품은 “개인의 내면의 솔직한 표현”이 됩니다. 솔직하게, 그리고 시원하게 표현하면서 작가 본인도 속이 시원하고, 읽는 사람들도 속이 시원해진다 이거죠.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란 개념입니다. 마광수 본인 말로 문학은 ‘똥 싸는 거’랑 똑같다고 합니다. “시원하게 똥싸면 그만이지, 똥이 이쁜 똥, 못생긴 똥이 있느냐?”는 겁니다. 따라서 위선을 부리며 이쁘장하게 쓰는 문학작품들을 혐오 합니다.

위 문학관에 따라, 교훈주의, 도덕주의적인 문학작품들은 문학이 아니라고 봅니다. 즉, 권선징악류 작품을 싫어하는거죠. 나쁜짓한 사람 엔딩에서 다들 벌받고, 강박적으로 이른바 “차카게 살자” 이런 것을 설파하는 작품, 작가 본인의 진심에서 나오지 않은 거창한 주제들 – 민주주의, 세계평화, 고상한 철학 – 이런 것들을 쓴 작품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쓸데없이 어려운 말 써가며 멋부린 현학적인 작품도 굉장히 싫어합니다. 작가가 위선을 부린다고 보는 겁니다.

2.마광수 교수의 이론적 배경

위에서 말한 철학과 문학관에 따라 이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론이니까 학문적인 배경이 필요합니다. 그냥 “우리 솔직하게 살자”이러고 말면 좀 없어 보이니까 근거가 필요하죠.

마광수 교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프로이트도 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래서 마광수교수도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신나게 인용합니다. 그 밖에 아리스토텔레스 약간, 동양 철학에서 주역, 한방의학 이런 것들도 가져와서 살짝 사용합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데 가끔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이건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3.마광수 교수의 작품들

마광수 교수의 책들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문학 이론서, 시와 소설, 에세이 이렇게 세 가지 장르의 책들을 무지하게 많이 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용은 그게 그거인거 같더군요. 그냥 위에서 설명한 본인의 철학을 장르만 바꿔 형태를 달리해서 쓴겁니다.

즉,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 문학 이론서를 쓰고 ⇒ 이 이론을 바탕으로 시와 소설, 에세이를 씁니다.

따라서, “솔직하게 살자” ⇒ “나의 솔직한 마음은 무얼까?” ⇒ “아! 난 야한게 좋아” ⇒ “솔직하게 표현해야지” ⇒ “아 점잖은 사람들이 싫어할텐데” ⇒ “지들도 야한게 좋으면서 위선자들” ⇒ “그 위선자들을 조롱해줘야 겠군”

이런 식으로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대다수의 작품들이 쓰이게 됩니다. 전 읽어보진 않았지만, 듣기론 주인공인 사라가 나쁜 여자인데 나쁜 짓하고 잘 먹고 잘산다는 헤피 엔딩인가 봅니다. “마광수 교수 본인 심리의 솔직한 표현 + 사회적 위선의 비판 + 나쁜짓해도 잘먹고 잘사는 주인공을 표현하여 교훈주의 문학을 조롱” , 이렇게 의도한 작품이죠. 즉, 그냥 별 생각없이 야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나름 이론적 배경과 의도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쓰여진 것입니다. 이것을 유죄로 판단한 판사와 검사가 참 무식한 것 같습니다.

실제 해당 소설을 읽었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보다 별로 야하지 않다. 는 평이 많더군요. 그리고 솔직히 그보다 더 야한 소설들은 당시에 차고 넘쳤다는 말들도 많습니다. 아마도 소설의 내용보다는 마광수 교수가 가진 지위, 즉 “교수가 품위없이 그런걸 쓰느냐”는 권위주의적인 이유가 유죄판결에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비평가로서의 마광수 교수

마광수 교수는 문학비평을 할 때도 물론 자신의 문학관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예를 들면, 만해 한용운의 어떤 시를,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대한 독립을 위한 열망”을 표현했다고 분석하는데, 마광수는 “여자 만나고 싶은 열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 이럽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음, 만해 한용운이 스님이었는데, 좀 무리수 아닌가?” 이랬는데, 나중에 조사해보니 한용운이 부인도 있었고 승려의 결혼을 허해야 한다고 주장 했더군요.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마광수 교수의 분석이 더 그럴싸 해보입니다.

이육사의 어떤 시를 보고는 다른 비평가들은 “강직한 의지와 희망”을 표현했다는데, 마광수는 “지금 이육사가 절망에 빠져좌절 중이다. 참 솔직해서 좋음” 이럽니다.

마광수는 다른 비평가들이 작품을 읽기도 전에 편견에 빠져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독립운동가는 맨날 대한 독립만 생각하나? 남자가 여자만나고 싶기도 한거지. 독립운동가라고 정신이 절대 무적인가? 시베리아 올라가면 얼마나 추운데 추워서 절망할 수도 있는거다.” 라고 생각하는거지요. “다른 비평가들은 애당초 ‘독립운동가 = 올바른 사람 = 옳고 강력크한 생각만 함’ 이런 교훈주의, 도덕주의적 편견에 빠져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으니 오히려 더 우수한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말합니다. 꽤나 그럴 듯 한 주장입니다. 오히려 시 자체의 문맥만 보면 마광수의 분석이 더 비약이 없고 그럴 듯해 보이더군요. 다른 비평가들은 시 자체에 그 작가가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넣어버리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도 있는거죠.

근데, 몇 가지 분석들은 좀 무리하게 보이는 것도 눈에 뛰더군요. 이상의 오감도를 분석하는데, “음.. 이건 좀 억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좀 허술합니다. 이런 문제는 주로 마광수 교수가 가져온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한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5.마광수 교수의 가치

감히 제가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마광수 교수의 가치를 따져본다면,

교육자 > 학자(연구자) > 작가

이런 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정말 재밌고 쉽게 쓰더군요. 어려운 주제를 쉽게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따라서 교육자로서 아주 탁월한 거 같습니다.

학자(연구자)로서도 준수하다고 생각되는데, 사실 그의 이론들이 아주 새롭거나, 특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강 프로이트 이론들 비스무리한 느낌이 드네요. 오히려 프로이트도 야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프로이트는 “우와! 대단해” 박수 받고, 마광수 교수는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도 욕먹고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듭니다. 아마 프로이트는 어려운 라틴어 용어로 말해서 폼이 나고, 마광수 교수는 쉽게 똥 얘기로 비유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마광수 교수의 설명이 이해하기 쉬우니 더 나은 것인데도 말이죠. 사실 마광수도 그의 전문적인 이론서에서는 어려운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죠.

작가로서는 제가 그의 시만 여러 가지를 봤는데, 시도 매우 쉽게 써져 있습니다. 솔직히 대중이 좋아하는 이쁘장하고 말랑 말랑한 시는 별로 없는거 같더군요. 잔잔하게 가다가 걸핏하면 야한게 나옵니다. 근데, 이쁘장하게 못 쓰는게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안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본 시 중에서 무난(?)하게 쓰인 시 하나만 소개하도록 하죠. 제목은 “사랑받지 못하여” 입니다.

님이여저는 아주 키가 작은 나무이고 싶어요.

우리들은 모두 다 외로움의 대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입니다.

나무들은 모두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어요.

그래서 대지와는 정반대 방향인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지요.

키가 비슷하게 작은 나무들은서로의 가슴위로 불어 가는 크고 작은 바람들을 함께 알아요.

모두들 외로움에 깊게 지쳐 있기 때문에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키가 큰 나무들은 그 큰 키만큼 고적하고 외롭습니다.

하늘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서로가 마주 보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무가 적으니까요.

님이여그래서 저는 아주 작은 한낱 잡목이고 싶어요.

키 큰 나무는 되고 싶지 않아요.

비록 아무 의미도 없이 쓰러져 땅속에 묻혀 버린다고 해도,

저는 그저 외롭지 않게 한세상을 살며

꿈꾸듯 서로 바라보며 따사롭게 위안받을 수 있는

그런 많은 이웃들을 가지고 싶습니다.

6.시대를 앞서간 마광수 교수

제가 본 그의 책들은 20년이 넘은 것들인데, 책안에 요새 활발히 거론되는 주제들이 많이 언급되서 놀랍더군요. 한가지만 언급하자면, 요새 유행하는 패미니즘에 대해 자주 말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패미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위선”이라고 봅니다. “남녀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부분을 억지로 똑같이 맞춘다” 대강 이런 논리인거 같습니다. 재미난 부분은 여자가 화장 등을 하여 꾸미는 행위를 자유롭고 긍정적으로 봅니다. 아얘 수십년전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시까지 썼더군요. 제목은 “여자가 더 좋아” 입니다.

차라리 여자라면 좋겠다.

그러면 먼저 화장부터 덕지덕지 야하게 하겠다.

머리는 꼬불꼬불 파마를 하고 울긋불긋 총천연색으로 염색도 하겠다.

머리털을 길게도 짧게도볶을 수도 펼 수도 있는 자유

치마도 바지도넓게 좁게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자유

남자처럼 그 신물나는 양복에 넥타이만이 아니라 수만 가지 스타일로 옷을 해입을 수 있는 자유

요란하고 섹시하게 꾸며도 되는 자유

적당히 기분좋게 노출을 해도 되는 자유

그런 여자의 자유가 나는 부럽다.

내가 여자라면 싸구려라도 좋으니 열 손가락에 모두 반지를 끼고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발찌까지 주렁주렁 달겠다.

그리고 손톱도 아주 뾰족하게 길러 열 손톱마다 각각 다른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하겠다.

(그 손톱으로는 물론 내 애인의 온몸을 슬슬 쓰다듬어 주지)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관능적으로 보인다는 것 하나만을 위하여 온 마음을 쏟아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이랴 얼마나 부러운 일이랴.

화장도 못 하고 머리도 못 기르고 목걸이 귀걸이도 못 하는 지금의 나

언제나 점잖은 척 뻔뻔한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나로서는,

자유를 두려워하는 겁장이인 나로서는.

그의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무튼 시대에 앞서 고민했던 흔적들이 많이 보입니다.

7.마광수 교수의 자살

아시다시피 마광수 교수가 작년 가을쯤 자살을 했지요. 전 여태까지 그가 “고생 고생하다 말년에 우울하게 살다가 못견디고 자살한 불쌍한 사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의 책을 읽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써진 책인데, 수도 없이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긍정적으로 자살을 묘사합니다. “태어날 권리가 없는데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자살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런 취지의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언젠가 자신은 자살로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것이 본인 판단에 이제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자살하신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그의 자살에 대한 철학이 옳든 그르든 간에, 아무튼 본인이 본인 스스로의 철학에 따라 선택하여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서두의 문장은 “고생 고생하다 말년에 우울하게 살다가” 까지는 맞는데, 그 이후를 “이제 때가 되었구나 싶어 자살한 사람” 으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신문기사나 여러 자료를 보면 이 부분이 제대로 밝혀진 곳이 없던데, 마광수 교수 본인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겠더군요. 우울해서 못 견디고 죽은 불쌍한 사람 취급받으면 좀 불퀘해 하실 것 같습니다.

8.끝으로

개인적으로 마광수란 사람이 좀 허무하게 사장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학계에서 왕따를 당해서 그런건지 그의 책이나 이론들도 별로 조명을 못받는 것 같더군요. 그의 책들도 잘 팔리지도 않고 많은 책들이 절판되어있습니다. 볼만한 책들이 많은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점이, 살아 생전에 분야를 좀 넓혀서 영화나 TV비평 등을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고, TV에서 마광수쇼 같은 것을 진행하거나 패널로 나왔어도 인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 본인이 “위선”에 대한 결벽증 적인 것이 있어서 유명해지거나 명예욕과 관련한 활동을 꺼려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편 너편 가리지 않고 위선적이면 다 위선이라고 비판하고 그러니 편들어 주는 지지자들도 거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활동 폭이 좁아지고, 자신의 본 모습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만이라도 “아 마광수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아주시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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