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석류에 관한 시와 폴 발레리의 시 <석류>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다음과 같은 석류에 관한 짧은 시가 있다 (민음사 판 100페이지). 이와 관련하여 역자인 김화영 박사는 이 시와 폴 발레리의 석류란 제목의 시를 비교해볼것을 권한다.

먼저 아래는 지드의 석류에 관한 시다. 볼드체는 내가 한것이다.

***

고이 간직한 보물, 벌집 같은 칸막이들,
풍성한 맛
오각형 건축.
껍질이 터진다, 낱알이 쏟아진다.
푸른 하늘빛 잔들 속에 담은 핏빛 낱알들.
또 다른것들은 유약 입힌 청동 접시속에 담은 황금 물방울.

***

지드는 석류 특유의 기하학적 구조에 큰 인상을 받은듯 싶다. 이러한 균형있는 구조는 대게 인간에게 신의 섭리하던지 어떤 신비감을 주게 되는데 지드도 이러한 인상을 석류로 부터 받았을것이다. 이 시에도 지드 특유의 잉여와 과잉의 사상이 담겨있다. 그는 석류를 대지의 양식이 과잉적으로 응축된 것으로 보고, 결국 일정한 시기가 되어 그것이 폭발하듯이 터지는 광경을 경이롭게 보고 있다.

아래는 폴 발레리의 석류란 제목의 시다. 볼드체는 내가 한것이다.

 

***

폴 발레리, 석류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地上)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시달림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 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파열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Dures grenades entr’ouvertes
Cédant à l’excès de vos grains,
Je crois voir des fronts souverains
Éclatés de leurs découvertes!

Si les soleils par vous subis,
ô grenades entre-bâillées,
Vous ont fait d’orgueil travaillées
Craquer les cloisons de rubis,

Et que l’or sec de l’écorce
À la demande d’une force
Crève en gemmes rouges de jus,

Cette lumineuse rupture
Fait rêver une âme que j’eus
De sa secrète architecture

***

이 시는 지드의 시와는 달리 별개의 작품으로 독립된것이므로 좀더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지드의 시와 거의 똑같은 사상을 담고 있는것을 알수 있는데, 발레리의 이 시에도 역시 과잉과 잉여의 개념이 담겨 있고, 석류 특유의 구조가 가진 신비감에 대해서 노래한다. 단, 이 시는 지드의 시와는 달리 마지막 연에서 석류(자연)와 자아(영혼)의 교류에 대해 직접적으로 명시한다. 지드의 시도 결국 이러한 사상을 시 이외의 부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발레리의 이 시는 독립된 작품이므로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된것이다.

재미있는것은 앙드레 지드와 폴 발레리의 삶에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사실 둘은 친구였으며 같은 문학 모임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발레리 역시 지드와 비슷하게 이른바 “실존적 위기”같은것을 경험한후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파리로 이주하여 십여년간 고독하게 지성함양에 몰두한다. 지드는 대도시 파리에서 아프리카 시골로 떠나고 주로 비이성적인 수양을 하는데, 거꾸로 발레리는 시골 고향에서 대도시 파리로 떠나고 주로 이성적인 수양을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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