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겨울 단평
이상진 감독의 영화 <창밖은 겨울>은 영화 감독을 꿈꾸던 청년이 자신의 꿈과 연인과의 사랑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버스 운전사로 일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전반적으로 밍숭맹숭한 느낌의 평이한 영화인데,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는 주인공의 꿈이 관객에게 호소력 있게 설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경이 되는 창원시의 모습을 더 살려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다만 이 영화에서 건질것이 하나 있는데, 여주인공인 배우 한선화의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꽤 괜찮아보인다는 점이다. 조사해보니 한선화씨가 부산출신이던데 그래서 그런지 아주 자연스럽게 사투리 연기를 보여준다. 왜 우리 영화들 속의 사람들은 대게 표준어만 구사하는걸까? 사투리도 잘 들어보면 아름답던데(특히 경상도 여성들의 오빠야~ 가 이쁜거 같다) 영화속 사용되는 언어들도 다채로워졌으면 좋겠다.
넘쳐나는 영화 꿈나무들의 애환물들
본 작품은 소위 말하는 “영화 꿈나무들의 애환물(이하 영꿈물이라 함)” 장르라고도 말할수 있겠는데, 이것은 영화 감독을 꿈꾸는 청년이 등장하고 이 청년이 꿈을 실현하는 와중에 각종 고난을 겪는 이야기를 담는다.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 이런 영꿈물들이 감독 지망자들이 주로 출품하는 영화제에 넘쳐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예전에 내 유튜브 구독자를 대상으로 단편영화들을 접수받아 나름 비평을 해주는 프로젝트를 운영한적이 있었는데 많은 작품들을 받아 보진 못했지만 일단 반절 가까이가 어찌되었든 청춘의 애환을 다룬것이었고, 이중 단 한작품을 빼고는 모두 주인공이 영화 꿈나무인 “영꿈물” 장르였다.
아마도 출품자들이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해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다소 순박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고, 출품자 대부분이 영화학교에 다니는 청년들일테니 자연스럽게 청년인 주인공이 영화감독을 꿈꾸는 스토리로 나아가는듯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것은 영화제 수상이라는 측면에서도, 영화의 작품성 측면에서도 대단히 안좋은 전략인 것 같다. 일단 수많은 비슷한 작품들과 경쟁한다는 측면은 차치하고서라도 불리한 이유 세가지가 더 있다.
첫번째 이유는,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교수나 현직 감독들이 많은데 이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새빠지게 고생을 했을지 눈에 선하다. 따라서 작품이 어지간히 설득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이들에게 고생을 주제로 어필하기는 힘들것이다.
두번째로, 굳이 청년의 애환을 다루겠다 하더라도 주인공을 “영화꿈나무”로 설정하는것은 현명치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영화감독이 구체적으로 어떤일을 하며 어떤식으로 고생을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생은 작품상으로 실감나게 표현하기도 애매하다. 실제로 위 영화 <창밖은 겨울> 역시 이같은 직업적 묘사가 아예 생략되버려서 관객들은 도대체 주인공이 포기할수밖에 없었던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짐작하기가 힘들게 되버렸다.
굳이 애환물을 만들겠다면 영화감독 대신 운동선수를 등장시키는게 적당할것 같다. 대강 체육복 입고 땀흘리며 뛰는 장면을 보여주면 되므로 표현하기가 쉽고, 사실 아예 이러한 직업적 묘사를 생략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뜀박질 한번 안해본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운동선수의 고생은 쉽게 상상할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꿈물들의 결론은 다들 비슷하고 딱히 특별한것이 없다는 점이다. 대게 이들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식의 결론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냥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나이도 젊은데 고생한다고 죽을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영화들의 결론은 화장실갔다가 뒤 안닦고 나온것처럼 다들 어딘가 모르게 찝찝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희망을 가진채로 묵묵하고 담담하게, 그래도 어찌되었든 참고 나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위 <창밖은 겨울>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 문제는 다른 글에서 다루었던 “사밀함의 객관화”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 관련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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